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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의 싸움에서 이뤄낸 아름다운 승리

드라마코드 2021.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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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때 진짜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1944년 컴퓨터 업계에 입문했던 그레이스 호퍼는 훗날 자신의 이 업계 투신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조그만 방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크기의 워드 컴퓨터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그녀는 곧바로 이 새로운 산업의 도전 과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노력을 통한 순수한 지적 기쁨은 그녀의 상상력을 꾸준히 펼칠 수 있는 자극제 역할을 했습니다. 1952년 마침내 그녀는 서브루틴에서 보낸 작업 흐로그램들을 편집할 수 잇는 새로운 형태의 마스터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이 발명품은 현재 모든 컴퓨터의 핵심 부분이 되는 컴파일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1955년에는 방대한 규모의 전산처리 능력을 갖춘 프로그램 언어인 코볼로 전환될 수 있는 컴퓨터 언어가 그녀에 의 해 개발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수많은 위대한 발명을 이루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컴퓨터의 어머니'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는지 그레이스는 해군에 입대했고, 진급을 거듭하여 최초의 여성 장군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녀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지하기 위해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런식으로 일해 왔소"라고 고리타분한 말을 할 때면, 그녀는 자신의 철학을 담아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지요. 하지만 그건 제대로 배를 활용하는 게 아니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자신의 철학을 반영하듯 그녀의 사무실에는 언제나 해적 깃발이 걸려 있었고, 벽에 걸린 시계는 거꾸로 뒤집혀 있었습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서로 싸우거나 낡은 방식을 고집하는 대신 유연한 사고를 통해 자신을 초월하도록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대학 강단에서 그녀는 첫 수업시간에 기말고사를 실시 했습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워야 할 내용을 미리 파악하고 그 이상을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학생들이 관습을 깨고, 실수도 저지르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예상하지도 못했던 가능성들을 파악하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녀의 업적을 통해 영감을 받길 바랍니다.

 

미지의 영역으로 항해하고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려는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는 가히 전설적인 것이였습니다. 1954년에 그녀는 조만간 컴퓨터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이며 컴퓨터의 크기도 신발상자만큼 작아져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은퇴한 지 오랜 후에도 그녀는 새로운 컴퓨터 응용분야에서 일했습니다. 또한 그레이스는 미군 현역 장교들 가운데 최고령자였고, 85세를 일기로 잠들 때 까지 디지털 이큅먼트사의 유능한 컨설턴트로 활동했습니다. 결국 부시 대통력은 그녀에게 국립기술훈장을 수여했는데, 그녀는 개인으로서 그 분야에서 남들을 능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잠재력을 자극하는 헌신적인 태도는 그녀를 해군 최고의 지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레이스 말고 자신을 초월했던 인물로 핸스 암스트롱이 있습니다. 암스트롱은 개인전 챔피언십을 여러 차례 우승하며 사이클 선수로서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권위있는 사이클 대회인 '투르드 프랑스'를 정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대회는 개인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팀워크도 필요로 하는데, 암스트롱은 오랫동안 지나친 경쟁심리를 키워온 나머지 훌륭한 팀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세계챔피언십 개인전에서 우승할 때면, 그는 큰 소리를 지르며 다른 선수들을 조롱하고 결승선을 통과하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과시했습니다. 또 그는 끊임없이 다른 선수들과 자신을 비교했고, 항상 분노에 차 있었으며, 최고가 되겠다는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다른 선수들에게 확실하게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참 전성기에 그만 생명을 위협하는 암에 걸렸고, 의사들과 그의 생존 가망성이 기껏해야 3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암과 투병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기 중심적인 자신의 승리가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인지 깨달았고, 만약 다시 한번 기회가 온다면 절대로 그런 인물이 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집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

 

이런 강한 바람 때문인지 그는 기적적으로 다시 사이클을 타게 된 것은 물론이고, 한 개인으로서나 운동선수로서 자신을 초월하겠다는 신념을 이룰 수 있는 새 삶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그는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아내 크리스틴과의 사이에 첫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암이 당신을 변하게 한 것입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어떻게 내가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암스트롱은 다시 사이클을 타게 되었지만, 미국 우편공사가 기회를 줄 때까지 그 어떤 사이클 팀도 그를 후원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어렵게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는 이제껏 자신이 해내지 못했던 것을 이루어 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는 '진실의 경주'라고 일컬어집니다. 그 이유는 고통스러운 경주를 통해 선수들의 성격이 적나라게 드러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팀원으로 활동하며 발병 후 첫해에 이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이듬해 또 다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나는 100살이 되어 등에는 성조기를 걸고 머리에는 택사스의 별을 그려넣은 헬멧을 쓰고 시속 75마일의 속도록 경사진 산을 소리치며 내려온 후에 죽음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또 내 아내와 10명의 아이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하고 싶습니다. 그런 후에 저 유명한 프랑스 패바라기들 속에 드러누운 채 숨을 거두고 싶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한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뻔했던 내 초창기 삶과 완벽한 대조를 이루는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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